"이번엔 진짜 놓치면 안 된다" — 새벽 3시 그래픽카드 재입고 12초
새벽 3시, 알림 소리에 눈을 떴다. "RTX 5090 재입고" 문구가 화면에 뜬 지 12초. 손가락은 이미 결제 버튼 위에 가 있었다. 이게 벌써 세 번째 시도다. 1월에 놓치고, 5월에 놓치고, 이번엔 기필코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알림을 걸어두고 잠들었던 참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사정
사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그래픽카드 하나 바꾸려던 거였는데, 올해 들어 가격이 세 번이나 뛰었다. 1월에 10~15% 오르더니, 5월엔 RTX 5090을 비롯한 고성능 라인이 또 올랐고, 7월엔 20~30%가 한 번에 붙었다. 결국 8월 기준 RTX 5090은 5100달러, 원화로 730만 원까지 갔다. 미루면 미룰수록 손해라는 계산이 서니까, 새벽에도 알림을 걸어두는 처지가 된 거다. 처음 견적을 짤 때만 해도 500만 원 초반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몇 달 사이 견적이 통째로 다시 짜야 하는 수준이 됐다.
원인은 TSMC 웨이퍼 가격 인상과 GDDR7 메모리 단가 상승이라고들 한다. GDDR7 2GB 모듈 하나가 20달러까지 올랐다니, 고사양 카드일수록 메모리를 많이 먹는 만큼 원가 부담도 커졌다는 설명은 그럴듯하다. 근데 이게 정말 원가 때문만일까, 아니면 어차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나니까 슬쩍 얹은 것도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 12초, 재입고 알림이 뜨는 순간
알림 문구를 본 순간부터 손이 먼저 움직였다. 로그인은 이미 되어 있고, 결제 수단도 저장돼 있다. 남은 건 재고 수량을 확인하는 것뿐인데,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3개, 1개, 그리고 "일시 품절". 이 전 과정이 12초 안에 끝났다.
이 12초 동안 머릿속을 스친 건 가격 걱정이 아니라 "이번엔 진짜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었다. 730만 원이라는 숫자가 크다는 건 알지만, 그 순간엔 계산기를 두드릴 여유가 없었다. 신용카드 한도부터 확인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평소라면 며칠은 고민했을 금액인데, 재고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있으니 판단 기준 자체가 흐트러졌다.
결제 완료 문구가 뜨는 순간, 안도감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걸 몇 명이나 이렇게 새벽에 눌렀을까"였다. 재고 3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면, 이 시간에 깨어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들 이러고 산다는 게 위로가 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12초 만에 다시 품절로 바뀐 화면
그 뒤, 달라진 건 계산기 두드리는 습관
결제는 끝났지만 찝찝함은 남았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소량씩 재입고를 반복하는 게 재고를 오래, 비싸게 파는 방법이라는 얘기도 있다. 진짜 그런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새벽마다 알림을 걸어두고 대기하는 소비자를 만들어낸 구조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재고를 한 번에 다 풀지 않고 몇 개씩 찔끔찔끔 내놓는 방식이, 어쩌면 가격 저항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삐딱한 생각도 든다.
이후로는 그래픽카드 가격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중급형인 RTX 5070도 기존 대비 20만 원이 올라 110만 원, 보급형 RTX 5060 Ti도 10만 원 올라 70만 원이다. 오르지 않은 라인이 없다. GDDR7 공급난이 당분간 풀리지 않을 거라는 전망까지 겹치면서, 다음 인상이 언제일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새로운 취미 아닌 취미가 됐다.
자주 묻는 질문
"그럼 지금 사도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답은 딱히 없다. 더 오를 거라는 전망도 있고, 이미 오를 대로 올랐으니 조정이 올 거라는 얘기도 섞여 있다. 다만 GDDR7 공급난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은 걸 보면, 급하지 않다면 굳이 새벽까지 깨서 잡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 하필 고성능 모델부터 오르냐"는 질문에는 답이 비교적 명확하다. 메모리를 많이 쓰는 모델일수록 GDDR7 단가 인상의 영향을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보급형보다 고성능 라인의 인상 폭이 늘 더 큰 이유다. 결국 사양을 올릴수록 가격 인상을 더 세게 맞는 구조라, 고사양을 노리는 사람일수록 지갑이 먼저 얇아지는 셈이다.
정리하면
- 2026년 1월·5월·7월 세 차례 GPU 가격 인상, 최근 인상 폭 20~30%
- RTX 5090 약 730만 원, RTX 5070 110만 원, RTX 5060 Ti 70만 원(2026년 8월 기준)
-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TSMC 웨이퍼 가격과 GDDR7 메모리 단가 상승
다시 새벽 3시가 됐다. 이번엔 알림을 걸어둘 이유가 없다는 게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화면 속 "재입고" 문구를 보며 결제 버튼을 누르던 그 12초는, 당분간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장면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