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로 돌아와도 30홈런은 치겠지' — 2026 오타니를 두고 벌어진 말다툼

오타니 쇼헤이 시즌별 홈런 수 추이

9월 다저스 클럽하우스에 내가 들어갈 방법은 없다. 그래서 방구석에 의자 두 개 놓고 가상의 두 명을 앉혔다. 한쪽은 오타니를 "역대 최고의 이도류"로 못 박아 두는 팬(이하 낙관론자), 다른 쪽은 "조건 몇 개 붙이고 나서 얘기하자"며 자꾸 토를 다는 삐딱이(이하 현실주의자)다. 안건은 오타니 쇼헤이의 2026시즌, 그리고 7월에 찍은 통산 300홈런. 미리 말해두면 이 대화는 결론이 안 난다. 원래 이런 대화는 결론이 나면 재미가 없다.

통산 300홈런,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낙관론자: 7월 7일 콜로라도전. 300호 넘겼잖아. MLB 역사에서 아시아 출신 타자가 여기까지 온 적이 없어. 이치로도 못 밟은 자리야.

현실주의자: 이치로는 애초에 담장 넘기는 걸로 밥 먹던 사람이 아니니까 그 비교는 좀 얍삽하다. 그리고 통산 300홈런 자체는 희귀템이 아니야. 300개 넘긴 타자가 150명이 넘어. 30년쯤 뒤에 이 숫자를 다시 꺼내면 "그게 왜 뉴스였지" 소리 나올 수도 있어. 기록의 무게는 개수가 아니라 속도에서 나오는 거지.

낙관론자: 그러니까 그 속도 얘기를 하자고. 빅리그 첫 타석부터 세어서 여섯 시즌 만에 300개를 채웠어. 서른 개 이상을 여섯 해 내리 찍었고, 그 여섯 해 중 상당 기간은 마운드에도 올라갔어. 타자만 해서 쌓은 300개랑은 원가가 다르지.

현실주의자: 거기까진 인정. 속도는 역대급 맞아. 다만 그래프는 평평하지 않아. 2021년 46개, 2023년 44개, 2024년 54개. 그러다 올해는 8월 기준 30개, 풀시즌으로 늘려도 40개 언저리 페이스다. 54개 찍던 시즌과 비교하면 14개가 어디로 증발한 거야.

낙관론자: 그 14개가 사라진 게 아니라 마운드로 간 거잖아. 투수 복귀하면서 타석에서 힘을 덜 쓴 거지.

현실주의자: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이도류의 성적표는 한 칸만 보면 절대 안 읽혀. 홈런 수만 뽑아서 "하락"이라고 쓰는 기사는 계산기를 반만 두드린 거고, 반대로 "최초"라는 수식어만 붙여서 파는 쪽도 나머지 반을 숨긴 거야. 둘 다 장사 방식이 똑같아.

낙관론자: 그럼 너는 이 기록을 뭐라고 부를 건데.

현실주의자: "한 사람이 두 직업을 굴리면서 쌓은 300개"라고 부를래. 그게 제일 정직한 문장이야. 아시아 출신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그 쪽이 훨씬 어려운 일이고, 나중에 누가 따라 하려고 해도 따라 하기 힘든 조건이거든.

2026시즌 타격 성적은 떨어진 건가

낙관론자: 슬래시라인 한번 보고 말해. 타율은 2할 9푼 4리고 출루율이 4할 2푼대, OPS 0.979에 리그 1위야. 이 숫자를 두고 하락이라고 부르면 나머지 타자들은 뭐가 되냐.

현실주의자: 하락이라는 단어는 안 맞아. 얇아진 칸은 담장 넘긴 횟수 하나뿐이고 나머지 칸은 오히려 두꺼워졌어. 작년보다 더 자주 1루를 밟았고, 53경기 연속 출루는 아시아 출신 빅리거 중 누구도 찍어본 적 없는 숫자야. 장타가 죽은 것도 아니고 2루타로 형태가 바뀐 거지. 담장 대신 좌우 갭을 노리는 타구가 늘면 홈런 칸은 줄고 출루 칸은 늘어난다. 그게 지금 이 시즌에 벌어진 일이고, 하락이라기보다 설계 변경에 가까워.

낙관론자: 그럼 오히려 타자로는 더 완성됐다는 거 아니야?

현실주의자: 팀 입장에서는 그쪽이 더 반가운 변화일 수도 있어. 1번 타순에 앉은 선수가 홈런 50개 치는 것보다, 매 경기 두 번씩 출루해 주는 게 라인업 전체 산수에는 더 이득이거든. 홈런은 혼자 1점이지만 출루는 뒤에 있는 타자 세 명을 일하게 만든다. 팬이 좋아하는 숫자와 구단이 좋아하는 숫자가 원래 같지 않아.

낙관론자: 그러니까 타격은 걸고넘어질 게 없다는 거네.

현실주의자: 방망이 쪽으로는 시빗거리가 없다. 내가 붙잡고 늘어질 부분은 전부 마운드에 있어.

투수 복귀는 순조로운 건가

낙관론자: 올해 마운드 성적 가져와 볼까. 등판 14번에 8승 2패, 평균자책점은 1.79야. 이런 성적표를 두고 순조롭지 않다고 하면 도대체 뭘 순조롭다고 부를 건데.

현실주의자: 숫자는 흠잡을 데가 없지. 내가 보는 건 숫자 옆에 붙은 각주야. 왼쪽 무릎 염증, 오른쪽 이두근 불편함으로 쉬었고 올스타전도 빠졌어. 투수로 돌아온 첫 해에 14경기면 몸이 이도류를 빠듯하게 버티고 있다는 신호다. 2021년에는 23경기 나가서 9승을 했어. 등판 수가 그때보다 줄었다는 게 핵심이야.

낙관론자: 복귀 첫 해니까 당연히 관리하는 거지. 처음부터 풀로 돌리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

현실주의자: 맞는 말인데, 그 "관리"가 매년 기본값이 되면 얘기가 달라져. 1.79라는 숫자도 14경기라서 나온 값일 수 있어. 표본이 작을수록 평균자책점은 예쁘게 나오거든. 규정 이닝을 못 채우면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어차피 밀리고, 그러면 이 성적은 "대단했지만 카운트되지 않은 시즌"으로 남아.

낙관론자: 불펜에서 35구 던지면서 복귀 준비 중이라잖아. 9월에 로테이션 복귀하면 되는 거 아냐?

현실주의자: 그게 이 시즌 최대 변수야. 9월에 로테이션에 다시 들어가느냐, 아니면 포스트시즌용으로 아껴 두느냐.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구단은 정규시즌 등판 수 몇 개보다 10월에 던질 수 있는 몸 상태를 훨씬 비싸게 쳐. 팬은 오늘 보고 싶고 구단은 다음 달에 쓰고 싶은 거지.

낙관론자: 그럼 등판을 아끼는 게 맞는 판단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현실주의자: 판단 자체는 합리적이야. 다만 그 합리가 매년 쌓이면 통산 기록은 조금씩 깎여. 투수로서의 누적 성적은 등판 수에서 나오는데, 매 시즌 몸을 아끼는 방식으로 관리하면 승수도 이닝도 탈삼진도 원래 찍을 수 있던 만큼은 안 나오지. 그러니까 이도류의 대가는 성적표가 아니라 성적표에 안 적힌 칸에서 치러지는 거야.

구단은 이 이도류를 어떻게 계산하고 있나

낙관론자: 계산은 무슨. 좋은 선수면 그냥 쓰는 거 아니야?

현실주의자: 그렇게 낭만적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면 9월 로스터 확장이 왜 존재하고, 유망주 콜업 날짜를 왜 그렇게 절묘하게 잡겠냐. 이도류 한 명은 로스터 한 자리로 두 자리 값을 하는 구조야. 타자로 한 칸, 투수로 또 한 칸. 그 절약분으로 불펜을 한 명 더 채우거나 벤치에 대주자를 하나 더 얹을 수 있다는 뜻이고, 그건 시즌 전체로 보면 승수로 환산되는 이득이지.

낙관론자: 그럼 구단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네.

현실주의자: 남는 장사인데 리스크가 한곳에 몰려 있어. 그 한 자리가 다치면 두 자리가 동시에 빈다. 그래서 등판일과 타순 운영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는 거고, 무릎에 염증 한 번 오면 바로 브레이크를 밟는 거야. 구단이 착해서가 아니라 자산 관리라서 그런 거다. 그리고 이런 계산은 스타 선수한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야. 마이너에서 준비된 유망주가 딱 하루 늦게 콜업되는 이유도 결국 같은 종류의 산수고, 팬은 그걸 "기량 점검"이라는 단어로 듣게 되지.

낙관론자: 그렇게 따지면 팬은 뭘 보고 응원하냐.

현실주의자: 응원은 응원대로 하고, 구단 발표는 발표대로 걸러 들으면 돼. "컨디션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문장이 나오면 대개 결정은 이미 끝나 있어. 다만 그 결정을 언제 알려주느냐가 로스터 운영이고, 그걸 눈치채는 게 이 취미의 가장 쓸모없고 가장 재밌는 부분이지.

다저스 팀 성적과 오타니의 관계는

낙관론자: 순위표 좀 봐라. 2위와 벌어진 격차가 10.5게임이야, 그것도 내셔널리그 서부에서. 이게 오타니 효과가 아니면 뭔데.

현실주의자: 다저스는 오타니 없어도 가을에 갔을 팀이야. 그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하자. 다만 달라진 부분은 분명히 있어.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먼저 50승 고지를 찍은 팀이고, 1번 타자가 4할 2푼대로 나가면 뒤에 선 무니시나 프리먼이 타점 올릴 확률이 올라가. 한 명이 팀을 캐리했다기보다, 이미 강한 라인업의 계산식에 상수 하나가 더 붙은 쪽에 가까워.

낙관론자: 그럼 6연패 했을 때는? 그때는 왜 캐리가 안 됐는데.

현실주의자: 웃긴 건 순서야. 팀이 여섯 번 내리 지는 동안 시즌 첫 멀티홈런, 그러니까 25호와 26호가 한 경기에서 같이 나왔어. 팀이 가라앉을 때 혼자 방망이가 터지는 건 이 선수의 오래된 패턴이야. 문제는 야구가 한 명으로 막히는 종목이 아니라는 거지. 선발이 3회에 무너지고 불펜이 불을 지르면 4번 타자가 뭘 해도 안 돼. 이건 오타니 탓이 아니라 야구 탓이야.

낙관론자: 그래도 연패 끊는 홈런이면 값어치가 다르잖아.

현실주의자: 값어치는 스토리에서 나오지 승패표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10.5게임 차라는 숫자는 8월의 극적인 한 방보다 선발진이 몇 이닝을 버텼는지에 훨씬 많이 빚지고 있어. 나는 그 재미없는 쪽을 보는 취향이라 이렇게 미움받는 거고.

유망주 랭킹은 이 사례에서 뭘 배웠나

낙관론자: 갑자기 유망주 얘기는 왜.

현실주의자: 이도류라는 게 원래 랭킹판이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라서 그래. 랭킹은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야 하는데, 투수 툴과 타자 툴을 한 칸에 어떻게 적냐. 그래서 이런 선수는 보통 "재능은 좋은데 결국 한쪽을 골라야 한다"는 문장으로 정리되고, 그 문장은 대체로 맞았다. 오타니는 거기서 예외가 된 사례고, 예외 하나 나왔다고 랭킹이 겸손해지는 걸 나는 못 봤어.

낙관론자: 그럼 유망주 랭킹은 보지도 말라는 거야?

현실주의자: 보는 건 재밌지. 다만 그건 예언서가 아니라 그 시점의 시장 소문 요약본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오타니 이후로 "제2의 이도류"라는 딱지가 여기저기 붙는데, 그 딱지가 붙은 선수 대부분은 결국 한쪽으로 정리된다. 한 명이 성공했다고 그 길이 넓어진 게 아니라, 그 한 명이 유별났던 거야. 나는 그 구분을 못 하는 하이프가 제일 웃기더라.

그래서 역대 최고의 이도류 맞나

낙관론자: 마지막 질문. 2026시즌까지 합쳐서, 베이브 루스는 넘은 거야 아니야.

현실주의자: 루스가 투타를 같이 한 건 보스턴 시절 다섯 시즌 정도야. 그다음엔 타자로 전업했지. 오타니는 이미 6시즌째 두 개를 같이 들고 있어. 통산 300홈런에 투수로 40승 이상, 탈삼진 600개 이상. 이 조합을 가진 이름은 MLB 기록지에 없어. 넘었냐고 물으면, 시대가 달라서 비교 자체가 반칙이라고 답할래. 굳이 한 줄로 쓰면 "루스가 포기한 걸 오타니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정도지.

낙관론자: 그거 사실상 넘었다는 소리잖아.

현실주의자: 단정하려면 조건이 하나 남았어. 가을에 투타 양쪽으로 임팩트를 남기는 것.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타자로 뭘 할 수 있는지는 이미 봤고, 남은 건 10월 마운드야. 포스트시즌에 선발로 올라가서 이기면 그때는 "넘었다"고 써도 아무도 시비 못 걸어.

낙관론자: 10월에 완봉이라도 하면 그날 인터넷 서버가 남아나지 않겠지.

현실주의자: 서버는 터져도 돼. 그 전에 무릎이 안 터지는 게 먼저지.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결론은 안 났고, 애초에 날 리도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뿐이다. 오타니 쇼헤이의 2026시즌은 아직 채점이 끝나지 않았고, 남은 9월과 10월이 이 시즌의 진짜 점수를 매긴다. 그때까지는 방구석에서 의자 두 개 놓고 계속 떠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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