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다리 두 개 절뚝이던 타자의 9회 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다리 두 개 절뚝이던 타자의 9회 말
1988년 10월 15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월드시리즈 1차전 9회 말, 홈팀 다저스는 3-4로 지고 있었고 아웃카운트는 두 개가 올라가 있었어. 마운드에는 그해 정규시즌 45세이브를 올린 오클랜드의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 이 사람이 9회에 등판해서 뒤집힌 경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당시에도 거의 없었지.
그런데 다저스 덕아웃 안쪽 어딘가에서 한 남자가 배트를 들고 있었어. 커크 깁슨. 그날 선발 라인업에 이름이 없던 사람이야. 왼쪽 햄스트링과 오른쪽 무릎이 동시에 고장 난 상태였거든. 방구석에서 중계를 보던 나 같은 사람도 "쟤는 오늘 못 나오겠네" 하고 결론 내릴 만한 몸이었다는 얘기야.
9회 말 2사 시점, 다저스 3점 대 오클랜드 4점
야구는 원래 이런 스포츠야. 감독이 짜놓은 계산이 끝까지 돌아가다가, 마지막 한 타석에서 계산기가 통째로 꺼져. 그 계산기를 끄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하필 걷지도 제대로 못 하는 선수였다는 게 웃긴 부분이지.
이 경기의 기록은 SABR(미국야구연구협회)의 게임 프로젝트에 1988년 10월 15일 1차전 경기 정리로 남아 있어. 나는 그 기록이랑 당시 회고를 짜깁기해서, 그 9회 말을 최대한 느리게 되감아 보려고 해.
먼저 상황부터 정리하자. 다저스는 4-3으로 끌려가는 9회 말 2아웃까지 왔고, 오클랜드는 리드를 지키러 에커슬리를 올렸어.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원정팀 각본대로야. 마무리가 나오면 경기는 끝난다는 게 그 시절 야구의 상식이었으니까.
그런데 에커슬리가 2아웃 상황에서 마이크 데이비스에게 볼넷을 내줬어. 홈런 한 방이면 뒤집히는 주자 한 명이 나간 거지. 볼넷 하나가 이렇게 무서운 거야. 안타도 아니고 실책도 아닌데, 이 주자가 깁슨의 타석을 만들어줬거든.
여기서 다저스 벤치가 꺼낸 카드가 깁슨이야. 구단이나 감독이 늘 하는 계산은 "이 선수를 지금 쓰면 이 선수는 끝난다" 같은 식이잖아. 그런데 이날은 계산이 아니라 도박이었지. 내일이 없는 1차전 9회, 걷는 것도 불안한 선수를 내보낸다는 건 계산이 아니라 체념 비슷한 결정이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읽어.
2사 1루, 카운트 3-2
깁슨이 타석에 들어서는 걸음이 이미 이상했어. 한 발씩 끌듯이 걸어와서 타석에 섰고,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하체가 버티질 못했지. 에커슬리 입장에서는 이보다 쉬운 타자가 없어 보였을 거야. 힘을 실을 다리가 없는 타자한테 승부구를 던지는 건 산수 문제에 가깝잖아.
그래서 그런지 투수는 별로 서두르지 않았어. 파울이 몇 번 나왔고, 깁슨은 매번 다리를 절뚝이며 타석을 벗어났다가 돌아왔어. 카운트는 결국 풀카운트, 3볼 2스트라이크까지 갔지. 여기서 에커슬리가 던진 게 백도어 슬라이더야. 바깥쪽으로 흘러가다가 스트라이크존 바깥에서 안으로 꺾여 들어오는 공이지.
깁슨은 그 공을 끌어당기는 대신 밀듯이 받아쳤어. 몸을 못 쓰는 타자가 팔로만 걷어 올린 스윙이었는데, 공은 우측 담장 너머 관중석으로 넘어갔지. 5-4. 경기는 그 순간 끝났어.
중계를 맡은 빈 스컬리의 멘트가 그 장면의 자막이 됐지. "In a year that has been so improbable, the impossible has happened." 번역하면 "이토록 있을 법하지 않던 한 해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도야. 이 문장이 그대로 이 글의 제목이 된 이유고. 더 화려한 수식어는 필요 없었어.
깁슨 홈런 전후 다저스 득점 3점에서 5점으로
홈런 이후에 바뀐 것
깁슨은 이 시리즈에서 그 타석 한 번만 섰어. 이 홈런이 그의 시리즈 전체 기록이 된 거지. 그 뒤로도 그는 더 나오지 못했어. 그런데 다저스는 시리즈를 4승 1패로 가져갔어. 다리를 못 쓰는 타자 하나가 팀 분위기 전체를 끌고 간다는 게, 데이터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벤치 뒤에서는 분명히 먹혔던 거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이야기에 약간 삐딱해. 이런 일화가 나올 때마다 "야구의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게 늘 마음에 걸리거든. 실제로는 에커슬리가 볼 하나를 다르게 던졌다면 이 이야기는 그냥 "다저스 1차전 패배, 대타 삼진"으로 끝났을 테니까. 낭만은 결과가 만드는 거고, 과정은 대개 체념과 도박이 섞인 어떤 것이야.
그래도 그 한 타석이 남긴 건 있어. 오래된 기록이나 수치, 영상은 지금 읽어도 새롭게 읽혀. 요즘 야구 기록을 순위와 함께 챙겨 보고 싶다면 지금 스포랭크에서 야구 순위와 기록 확인하러 가기를 눌러서 지금 시즌 흐름부터 훑어봐. 옛날 얘기만 하다 보면 오늘 경기를 놓치거든.
그 경기를 회고한 이야기들은 MLB.com의 25주년 회고 기사에도 남아 있어. 몇 번을 읽어도 같은 장면으로 돌아오게 돼. 절뚝이며 타석에 서는 남자, 풀카운트, 낮게 꺾이는 슬라이더, 그리고 담장 너머로 사라지는 공.
우리는 여전히 유망주 순위표를 믿고, 구단의 계산을 신뢰하고, 확률표 앞에서 고개를 끄덕여. 그런데 야구는 가끔 그 표를 접어놓고 다리 두 개가 성치 않은 사람에게 마지막 타석을 준단 말이지. 나는 그게 이 스포츠에서 유일하게 계산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아직도 9회 말 2아웃이 되면 채널을 못 돌리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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